미련한 인생
-고통은 인생과 함께-
2023.10.07.
정신과의사 정동철
배가 꼬인다. 트림이 나오질 않아서다. 역류성 식도염 가능성 때문일 거다. 호흡이 가파르다. 폐암 완치판결은 받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후유 현상 힘들다. 고통이다. 이 고통을 어디까지 언제까지 끼고 가야 하나. 대책이 없다. 거금을 들여 살겠다고 고군분투 투자를 하면 달라질까? 그럴 생각 자체가 없다. 없는 답에 자신만의 명을 여기까지로 단정, 이미 정한 결론, 그러나 힘겹다. 아령을 들고 두 바퀴 돌다 잠시 멈춰 남기는 글, 누굴 위해서일까?
11:29
브레이킹 댄스, 처음 듣고 새롭게 보는 스포츠, 항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체 나는 숨 제대로 쉬지 못해 가쁘기만 한데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 숨이 턱에 걸리는 형편, 청계산이 자꾸 떠 오른다. 생사의 경계선이기도 한 듯, 수 없이 넘나들고 있는 형편에 왜 죽음을 웅켜쥐고 이렇게 헤매고 있어야 하지? 정말 모를 일이다. 딱 멈추고 싶다.
너무 너무 힘겹다. 고통스럽다.
12:03
고통 뒤에 무엇이? 낙이 온단다. 고통은 고통을 낳을 뿐이다. 사이사이 결코 한숨 돌리는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 차라리 죽음을 당겨오는 것이 한결 현명할 것이다. 아니 그것이 답이다.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 고통이든 뭐든 겪어야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면? 갈림길 청계산 넘어 죽음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아야 할 청계 요금소, 다른 길 고속도로 외길 어디론가를 찾아가야 하나?
숫제 와장창 스스로 처박아야 하나? 그러고 싶다. 고통 그것에 질질 끌리는 것보단 한결 나을 것, 그래도 죽음이니 냉정해야 한다고? 답이 없다.
숨 영 편하지 않다. 아니 고통, 식도에서 항문까지 길이 완벽하게 닫혀있어서다. 뚫릴 여지 자체가 없어졌다. 불가능한 기대.
14:30
청게산 정점을 넘겼다. 내려오는 길 지지부진 그러나 숨을 쉴 것 같아졌다. 청계 톨게이트를 지나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일 일요일 인천으로 가야 한다. 아들(정신과 의사)의 병원 거기 환자들을 봐야 한다는 신념, 추석으로 근 일주일의 휴식을 고스란히 즐긴 의사들과 직원들 얄미울 정도다. 내일부터 또 한글날로 3~4일을 쉰다. 56년 전, 1967년 청량리뇌병원에 취업, 세 명의 “소”가 환자를 본다는 소문 파다했다. 그 ‘소’들은 서울대 선후배, 연휴가 있는 경우 당연히 쉬었지만 환자를 위해 의사의 도리를 하려고 사잇길 돌아가며 회진을 하곤 했었다.
삭막한 현실, 그런 소는 이미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다. 조금은 누그러지는 몸, 입에서 항문으로 통하는 장(腸)길이 절반은 열리고 점심은 걸렀다.
악물고 다지고 있다. 내가 해야할 일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다. 내일 일요일 출근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연휴의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다시 증상이 찾아들까? 거의 1년째 이틀이 멀다하고 점점 발작적으로 잦아들고 있다. 편한 시간 길어봤자 정확히 1주일을 더 넘기지 못한다.
누굴 원망하랴 나의 운명인걸, 문제는 아내, 아내를 두고 청계 요금소를 넘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길을 상상하면 앞에 별들이 튄다. 10년 살 준비를 그래서 이미 끝낸 것도 무관하진 않다.
누구나 가야 할 길, 삶과 죽음은 늘 공존한다. 길고 짧은 것이 다를 뿐, 나에게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닐까? 버릇처럼 월 1~2편 올리던 글 7월1일에 작정한 대로 마지막이었었다.
침실 침대 옆 얌전한 고전 탁자, 그위엔 책들이 여러 권 싸여있다. 사이사이 읽고 또 보며 동행하기 위함이다.
「뇌·DNA·양자(量子)」, 「양자 우연성」, 「우리 몸은 전기(電氣)다」, 「빛의 물리학」, 「정신분자 생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 물질」, 「퀀텀 유니버스」, 「양자물리학 100년사」, 「바이오 센트리움」, 「쉽게 쓴 후성유전학」, 「간화선(看話禪)」, 「뇌과학의 모든 것」, 「백미러속의 우주」,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게」, 「장자(莊子)」, 「회원수첩(동기회-2013)」,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희 명부-2015」... 하지만 너무 외톨로 두는 것만 같다. 정리를 해야 하겠는데 오히려 책을 앉아서 보기보단 누워서 보는 나의 버릇 탓에 옆에 더 늘어날 낌새.. 꾸며진 서제엔 3면이 책장 거기 꽉 찬 책들 매일 몇 번씩 앉지만 힘겨워 달리 방도가 없다. 여기 본문 인용은 없기에 저자/출판사/년도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나저나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리며 책을 봐야 한다는 것, 이거 미련한 인생은 아닌가?
고등동(성남시) 피난살이 때다. 청계산으로 나무를 하러 무리를 따르던 시절 중학교 2학년에 오르자마자 터진 전쟁, 청계산을 바라보며 늘 오르내리던 어느날 습관적으로 고장의 선배들과 하늘의 비행기 소리를 향한다. 왠일? 비행기 두 대가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간다. 곧 부디칠 듯 조마조마한 마음에 결국 터지고 말았다. 부닥친 것이다. 곤두박질, 불꽃놀이처럼 마구자비로 빙글빙글 내리꽂는다. 바로 내가 지금 청계산 톨게이트를 넘는 그 자리로. 영상이 겹친다. 고등동 선산엔 북한 미그기가 전쟁과 함께 처박혀있었던 기억과 더불어 선명하다.
삶은 누구도 이승의 의미와 시제(時制)를 같이 할 수 없어 알 길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 처럼.. 그러나 내일 나는 청계산을 넘어가야 한다. 숨길이 가로막아도 갈 순 있겠지? 아들, 아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 근 3백명의 환자들 의사는 필수다. 설사 떠나야 한다 해도 그 후로 정해지길 소망할 따름이다. 미련한 인생 적어도 그런 자리는 피해야 하기에 그렇다. (202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