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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 우리는 「하나」 덧글 0 | 조회 3,244 | 2022-01-05 00:00:00
관리자  

나는 하나, 우리는 하나

-경어(敬語) 문화와 세대갈등-

2022.01.05.

정신과의사 정동철

 

한두가지가 아니다. 다틈과 다름, 일일이 예를 들 수가 없다.

미래세대의 소중함을 위해 기성세대가 갖추어야 할 마음의 준비, 그것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빚을 남겨줄 일이 아니다. 급한 것은 말투부터다. 천량빗도 말 한마디로 갚는다더니 옛말이다.

! 뭐하는거야! 이것도 모르나! 엉뚱한데 한눈팔려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알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열심히 할께요. 용서해 주세요..”

MZ세대와 꼰대 얘기다. 서로 미치고 환장하겠단다. 관계야 어찌 됐든 증오와 울분이 자리할 뿐이다. ’옥소가 있어 다행? 이대남 정치 플랫홈 말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다. 선진국이 아니라 쌍놈이라 생각했다. 위아래가 없다. 말끝에 (Sir)!”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부모 자식, 직장 상하가 없는 똑같은 말투가 전부다. 외국인이 한국의 말을 배우려면 곤욕을 치르겠다. 경어(敬語)와 존대말 때문이다.

어제 영국의 BBC 인터넷판에 실린 글을 봤다. 영국의 한 젊은이,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인사를 하고 나온다. 식당주인 할머니가 고마워요”. ‘thank you’라는 말이 사람 따라 쓰이는 법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한국 문화를 거론한다. 5000년 조선조에 스며든 문화, 간단한 의미가 아니란 얘기다.

https://www.bbc.com/travel/article/20211214-where-asking-someones-age-isnt-rude

 

고맙다, 고마워, 고맙군, 고맙고, 고맙소, 고마우이, 고맙네, 고맙구료, 고마워요, 고맙군요, 고맙구만요, 고맙네요, 고맙습니다.. BBC에 소개된 단어는 아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울 리 없을 거다. 세대 간의 갈등을 강조하는 언론, 이렇게 하나의 뜻에 수많은 단어가 사용되는 판국에 뭔가 하나만 가지고 그 사람의 실체를 평가한다. 무리가 생긴다. 불문가지 갈등이 고조된다. 젊은이를 이해하는 것도, 늙은이를 이해하는 것도 모두가 정말 어렵기로 기가 차다. 몇 마디로 치부를 해 버리는 현실, 소홀한 것은 아닐까? 영끌, 젊은이만 있는 것? 젊은 꼰대가 작동한다는 현재, 자기 중심적이란 의미도 있으니 말이다. 서로 인상이 일그러진다.

 

2030 젊은 세대만, 중년 세대만, 늙은 세대만 따로 살 수 있으면 문제가 없을 거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걸 딱히 바라며 기준으로 삼아 평가를 한다.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세대끼리만 살아도 마찬가지 결과다.

기억력이란 단어(機轉)를 끼어 넣는다. 다른 세상이 된다. 언론에선 자신이 경험한 과거는 깡그리 기억하는 것이 정상이라 강조한다. -정신의학의 과학적 입장에선 전연 다른 얘기라 한다. 당장 같이 본 것도 며칠 후가 아니라 돌아서면서 기억을 달리하고 딴 소릴 한다. 늘 겪는 현실이다. 뇌 기능이 그렇다. 의도적 거짓말이 아니다. 물론 거짓말을 작정하고 하는 경우는 다르다. 뇌과학의 생리적 현상에서 그렇다는 것. 모두가 자주 경험한다.

 

베란다에 빨간 장미꽃이 피었다고 치자.

아내나 나는 똑같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다. 한데 그 정도가 같을까? 나름의 빨간 장미꽃의 색감과 그 모양에 대한 느낌은 다르다. 과거력과 연결되면 온도차가 깊어진다. 다른 예, 가령 덕수궁의 빨간 장미를 보며 한참 열정적 연애 시절 그와 찍은 진한 사진, 깊은 추억의 연인이 있었다고 하자. 그가 남자든 여자든 김 씨라고 가정하자. 어쩌다가 배신을 당해 헤어졌다. 그 후론 덕수궁을 들어가기가 싫다. 덕수궁을 보는 것도 싫다. 덕수궁이 있는 서울 시청광장까지도 별로다. 본래의 장미와 무슨 상관이 있나? 더 나아가 김씨 성을 갖은 이성을 새로 만나는 것 자체도 찜찜해 피할 수도 있다. 뒤집어 말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오만가지 허구와 미묘한 오해로 변질될 것이다. 놀랍다. 경험된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태어나 17년이 되면 뇌의 발달은 완성되는 걸까? 과연 18세 국회의원이 된다면 그만큼 성숙한 뇌를 가지고 있다는 과학적 검증이 끝난 것이라고? 기억은 뇌 신경세포 하나가 1000개의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된 결과다. 그 고리는 시냅스, 거기에 기억이 저장된다. 전기의 활동전위와 화학물질의 변환 보조로 신호전달이 이루어진 결과다. 그 수는 나이와 필요에 따라 변한다. 신경세포 핵이 있는 본체와 다른 세포에서 온 정보를 다른 세포로 건네는 과정에 가시(spine) 치기가 있어서다. 결과는 어마어마하다. 뿐이 아니다. 이웃하는 세포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는 것만이 아니다. 뇌 멀리 기능이 다른 부위의 신경세포와도 연결된다. 성숙할수록 그렇다. 신경세포는 자라지 않는다고 했었다. 아니다. 노년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정지되는 건 아니다. 통상 우리가 살아가는데 희로애락은 항상 공존한다. 증오와 분노의 전달과정을 느리게 하는 신경세포도 있다. 바로 장미열매(rose hip) 신경세포다.(Tamis의 의식과 사고기능, Lein의 욕구나 욕망을 억제하는 세포;Naturescience 2018) 완벽하게 그 생리적 기능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 존재는 확인됐다. 화가 터지는 걸 미룰 수 있다. 뇌의 성숙도와 관계가 있다. 청춘의 혈기왕성함과 중장년층의 유연성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무작정 MZ세대만 옳은 것은 아니다. 물론 창의성은 분명 앞선다. 하지만 창의성으로만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지도 않다. 창의성의 방향 나름이다. 역동성은 올림픽을 통해 누구나 젊음의 의미를 안다. 노벨수상자의 시발점은 대개 20대다. 완성된 논문이 발표되고 거의 10년 후에 노벨 수상자가 결정된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의 청춘이 창업에 성공한 뒤 한 말, ‘공부가 싫어서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이 아니다. 공부는 한다. 지금도 한다. 새로운 플랫폼을 위해서다.’ 얼마나 대견한가. Z세대의 단점 중 하나는 앞에서 말한 그대로다. 불쾌한 감성을 지연 자제에 필요한 장미열매 신경세포가 발달하지 않아서다. 거칠다. 천량빚이 없어진다고? 오리려 더 퉁탕거린다.

 

세상이 바뀌었다.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만만치 않다. 당연히 또래처럼 대놓고 말할 수가 없다. ‘언제 가나(언제 부모가 죽을 건가).’ 상사나 청와대에선 같은 어른 사이도 엄청 힘들다. 그뿐인가. 회자 되는 요즘 얘기, ‘성인이 됐는데 아들이 무슨 가족, 지 책임이지. 얘비는 남인데 왜?‘ 아예 아들 취급을 하지도 않는 형편이란다. 누구 때문이라 할 시절도 아니다. 갈등은 지속되고 험해진다. 한데 상속문제가 나왔다 하면 난리굿 보통이 아니다.

누굴 탓하랴. 공평할 필요도 없는데. 기성세대나 젊은이나 다 같은 책임과 의무에서 말이다. 우리는 둘이다. 독립투사에겐 우리가 소중하겠지만 이즘의 2030세대는 내가 소중하다. 우리가 소중해도 내가 있어야 가능하 투쟁. 내가 소중해도 우리가 있어야 역시 의미가 산다. 얽혀있을 뿐이다. 18세에 선출직, 아예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땡기자 한다.

 

하와이 미 육군의 군 병원 원장실, 원장은 별이다. 같이 일하는 졸병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어쩌고 저쩐다. 우리식으론 버르장머리없는 천하에 상놈이다. 일단 공공행사에선 그러나 깍듯하다. 1963년도 경험이다. 우리의 현실, 말을 놓는 것도 아니고 어정쩡하다. 왜 이해를 못 하나, 속된말로 쌍욕이 일쑤다. 꼰대? 못 말린다는 의미다. 부모나 상사는 자식과 직원을 이해하려고 혜아릴 때가 있다. 젊은 세대가 꼰대를 이해하겠다는 건 아예 없지 싶다. 바라는 건 빨리 떠나라는 것뿐이다. 100세 시대가 되다 보니 환장할 일이다.

 

갈등은 이어진다. 젊은 대표가 후보를 향해 짜증날 정도의 꼰대노릇을 한단다. https://www.chosun.com/

politics/politics_general/2022/01/04/XIGXPDYZCNHQLHDIVHU4X4SK2Y/ 세대간 갈등은 없어지려나? 조건 없이 젊음이 양보, 아니면 늙은 꼰대가 양보하라고. 상속도 그렇게 할까? 그런 노인들이 많아진다. 자식들에 얹혀 살기 보단 혼자 산다. 어려서 키웠던 대가는 바라지 않는다. 물려주기보단 기부를 한다. 대체 우린 이념을 떠나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독일의 양자(量子) 물리학자 하이젠 베르크는 강조했다. 옛날의 꼰대얘기? 양자확률의 양자 컴퓨터를 고려할 일이다.

현대 과학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적 정신을 포용하지 않고선 현대과학의 수용은 불가능하다. 이런 철학적 정신을 받아들일 때 전통적 도덕과 관습은 커다란 진통을 겪게 된다. 이러한 진통 후의 결과가 감정적 충돌이나 탈 도덕성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하기 위해선 새로운 문화에 대해 수용 태도가 유연하니 젊음의 특성 과학 정신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을 길러야 할 일이다. 통찰력은 전통문화와 새로운 물리학적 사상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철학적 정신을 슬기롭게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W.Heisenberg-최종덕 옮김: 철학과 물리학의 만남.한겨례.서울.1985) 자유와 개개인의 정신과 물질적 재산권을 보장하면서 말이다.

2030세대 삶의 현실이다. 양자암호 대부분 안다. 그는 양자역학의 근원이 되는 매트릭스 역학과 불확정성원리를 창시하여 노벨상(노벨 물리학수상,1932)을 받았다. 27세에 이미 라이프찌히 대학교수로 재직, 그의 과학과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꼭 양자물리학만 과학이 아니다. MZ세대가 지니고 있는 IT과학 그리고 거기 매타버스를 통한 무한 영역이 유혹하는 소신과 신념 곧 적절한 철학을 암시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젊은 세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1차적으론 자신을 위함이라지만, 분투하고 있을까? 대견하다. 자랑스럽다. 내가 우선하나 우리를 잊지 않는 젊은이들, 미래의 대한민국이 어디며 이루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그것은 자신들의 깊은 철학 곧 신념과 소신 속에 있을 거다. 화려하게 점등하는 약속들, 눈앞의 선정적 가상현실이 아니라 내일, 미래를 위해 필수가 되는 곳, 순간이동 즉 양자얽힘이 양자컴퓨터에 의해 펼처질 확률세계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일 거다. 당연히 다틈다름의 극한 차이와 효과를 익힌 가운데 동행하고 있을 것이니 더 무슨 조언이 필요할까.. (2022.01.05.)